얼마 전 아이와 함께 아파트 단지 내 상가를 다녀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
신호등 없는, 단지 내 차가 다니는 길에 있는 횡단보도였습니다. 이미 횡단보도에 들어서 건너가고 있는데 반대편 차선 쪽에서 차가 그냥 지나갑니다. 큰 대로도 아니고 편도 1차선 단지 내 도로라, 이미 저희는 건너편 차선 가까이 와있었으므로 느낌상으로는 바로 앞으로 차가 지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계속 중얼거립니다.
"진짜 그냥 지나가네.... 너무하네.... " 궁시렁 궁시렁.
한국에 들어오면서 몇 가지 아이에게 주의를 준 사항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살던 동네는 마드리드이긴 하지만, 시내가 아니고 약간 외곽의 거주 중심 도시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위치나 분위기가 분당이나 일산 정도 느낌일 것 같습니다.
마드리드 시내는 대부분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있지만, 저희가 살던 곳은 외곽이라 신호등 없이 횡당보도만 그려져 있습니다. 이 횡단보도를 사람들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차를 살피지 않고 그냥 건넙니다. 당연히 차가 멈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루는 지인과 산책 삼아 걷고 있습니다.
조금 애매하게 차가 오는 게 보입니다.
저희는 일부러 조금 걸음 속도를 늦춥니다.
가던 차가 멈추지 말고 그냥 가라는 속내였습니다.
그런데 차가 와서 멈춥니다.
종종걸음으로 얼른 길을 건넙니다.
"멈추지 말고 가라고 기껏 천천히 걸었더니..."
차가 먼저인 것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사람이 우선인 규칙이 잘 지켜집니다.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는 인도 쪽에 사람이 보이면, 혹 건널 것을 대비해 차의 속도를 조절합니다. 사람이 횡단보도 쪽으로 오면 차를 멈춥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는 간단히 손을 들어 고맙다는 표시를 합니다. 그럼 운전자도 간단히 손을 들어 인사에 응합니다. 간혹 운전자가 길을 건너려는 사람을 뒤늦게 알아차려 차를 세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거의 대부분 손을 들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합니다. 정말 실수라는 표정이 대부분 드러납니다.
이렇게 사람 우선인 상황이 몸에 익은 아이가 우리나라 횡단보도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건널까 싶어 얼마나 여러 번 조심하라고 다짐을 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대충 알았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로 피부로 느낀 듯합니다. 정말 다르다는 것을. ㅠㅠ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도 그렇고, 우리나라가 좋은 점도 너무 많습니다. 자랑스러울 때도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빠르게 성장하려고 노력했던 습관이 남아 있는 것 중 고쳤으면 싶은 것도 있습니다.
이제 횡단보도 앞에서 한 번 정차하는 정도는 지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