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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일상을 보내며

아주 오랜만에 맛본 건포도 송편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명절이 되면 설에는 만두를 빚고, 추석에는 송편을 빚었습니다.

명절이 끝나고 돌아가는 작은댁에 들려 보낼 양까지 만드느라 늘 한상 가득 둘러앉아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추석에 만드는 송편 소 중 저희 집만의 독특한 재료가 건포도였습니다.

보통 깨, 밤, 콩을 넣는데, 이런 것들도 넣지만, 건포도에 설탕을 버무려 송편 소로 넣었습니다.

새콤달콤한 맛이라 저는 아주 좋아했던 맛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아니면 먹을 수 없는 맛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건포도 들어간 송편을 먹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 추석엔 시댁에 내려가지 않고 그냥 집에 있습니다.

아이에게 집에서만 보내는 명절이 좀 서운할 것 같아, 송편을 같이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쌀가루를 떡집에서 사 와 반죽을 시작하는데, 반죽은 처음이라 반죽 농도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밀가루 요리 반죽보다 되직해야 하는데 처음엔 너무 묽게 반죽이 되어 농도를 맞추다 보니 반죽 양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ㅠㅠ

딸과 남편과 어찌어찌 대혼란의 과정을 거쳐, (내가 괜한 일을 시작했지...라는 자책의 순간을 수없이 넘기며... ㅋㅋ)

깨와 건포도 두 가지 종류로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모양은 송편이 아니라 마치 왕만두 같은 느낌이지만, 

한 20년 만에 먹어보는 건포도 속을 넣은 송편이었습니다.

 

만두같이 생긴 송편

식구가 둘러앉아 엄마가 어릴 때, 어떻게 송편을 만들었는지, 엄마에게 건포도 송편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도 나누고,

엄청 이상한 모양의 송편을 만들며 기가 차 웃기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송편이 모양과는 달리 맛은 있어 또 한 번 웃으면 보낸 명절입니다.

 

딸냄이가 송편 만들며 웃고 떠들었던 기억을,

보통은 먹어 보기 힘든 건포도 송편의 맛은 어땠는지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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