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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교육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그 경계.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피아노 치시는 것을 보고, 자극받아 자신도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습니다. 일시적인 생각일 수도 있어, 조금 시간을 주었는데,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배우고 싶다고 하기에 피아노 학원을 보냈습니다.

1년 정도 재미있게 배우며 다녔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피아노 학원이 진행하는 방식일 거라 생각하는데 바이엘을 배웠고, 소곡집이라는 책의 일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저희가 스페인으로 나가게 되었고, 피아노를 계속하고 싶다 하기에, 처음 6개월은 학교 방과 후 활동에서 배우다, 나중에는 개인 레슨을 통해 배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피아노를 배운다고 할 때는 대부분 바이엘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체르니 몇 번을 친다라는 것으로 아이의 피아노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기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피아노를 안 배웠는데, 남편은 피아노를 체르니 40번까지 배웠는데 그 과정이 재미없었고, 지루했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아이가 배울 때는 그런 부분이 없었습니다. 학교 방과 후 활동 수업도 그렇고 개인 수업도 마찬가지로,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곡을 가지고 연습하는 형태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는 피아노 레슨 시간을 즐기고 재미있어했지만, 부모 입장인 저는 진도 기준이 없으니 사실 답답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뭐랄까.. 피아노 치는 순간을 즐기긴 하지만, 어떤 목표가 없으니 뭔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동기가 없어 보이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뭔가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위한 목표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어떤 방법이 있겠느냐는 상의를 드렸었습니다. 그랬더니 ABRSM이라는 시험을 알려주셨습니다.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단체가 공인된 음악 시험을 주관하고, 시험을 통과하면 국제적인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 시험입니다. 악기를 선택하고, 선택한 악기를 가지고 grade 1부터 grade 8까지의 단계 중 원하는 단계를 선택하여 응시하는 시험입니다. 아이에게 의견을 물으니 흥미를 보여 이 시험을 준비했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오기 바로 전 시험을 응시했고, 결과 통보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 들어오며 이삿짐도 배편으로 오기 때문에 약 3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아이는 피아노를 치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갔습니다. 최근에는 피아노의 필요성이 의심될 정도로 피아노를 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대략 7개월 정도 피아노와는 거리감 있게 지낸 셈입니다.

 

지켜보다 아이에게 피아노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요즘 도통 피아노를 치지 않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이의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뭔가 좀 쳐보고 싶어서 치려고 했는데 자기가 원하는 만큼 안되니 점점 거리가 생기며 멀어지더라는 겁니다. ㅠㅠ

 

어떤 뜻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자기 머릿속에는 자기가 치고 싶은 곡을 상상처럼 연주하고 싶은데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으니 자꾸 안 하게 되고, 그러니 더 손가락이 굳고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이가 스페인에서 피아노를 배운 방법은 자기가 원하는 곡을 연주하며, 음악을 이해하고 즐기기에는 적당해 보였는데,,,, 뭐랄까 많은 연습량에 의해 테크닉이 증가하는 측면으로 보자면 좀 부족하다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공을 할 것도 아니고, 앞으로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터라 그런 수업 방식에 불만 없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좀 더 오래 지속해서 어느 수준 이상이 되었다면 테크닉적인 부분도 충분히 완성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마도 아이의 실력이 조금 애매한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아이의 머릿속 수준과 본인이 실제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간극으로 인해 아이는 조금씩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아이는 조금 더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배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아마 자기가 상상하는 수준의 실력을 갖고 싶은 것이겠지요. 

 

코로나 사태로 학교도 일주일에 1번 가는 상황이고, 여름 방학 후에도 금방 상황이 바뀔 것 같지 않은 시간적 여유가 아이가 뭔가 배우는 데는 오히려 나쁘지 않은 환경을 제공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와 몇 군데 피아노 학원 상담을 갔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아이들의 등원 시간을 조율해서 운영하느라 신규 학생을 받을 수 없는 곳도 있고, 학원마다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그중 한 곳의 선생님이 아이의 상황도 잘 이해하시고, 무엇보다 아이를 유머러스하게 응대해주시는 모습이 아이와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실력보다 연주가 제대로 안 나와 조금 의기소침해 있는데, 피아노를 몇 개월 안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농담을 섞어 아이를 편하게 대해 주시는 모습에 아이가 긴장을 푸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행스럽게 학교를 1번만 가니 오전 시간으로 시간을 조율해 수업을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업을 3번 했는데, 아이는 매번 다녀오며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벌써 수업이 끝나 놀랐다고 하는 것을 들으니 정말 재미있게 배우고 온 것 같습니다.

 

잘하면 즐길 수 있다는 말도 있고,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잘하는 수준과 좋아하는 수준에 따라 그 사이 변수도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경계의 선에 서있을 때,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에 따라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끌어당겨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은 문제지만,

아이가 조금은 주춤하거나 힘들어할 때 어떤 동기와 자극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이 둘은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시작이 부모가 원하는 것인지, 아이가 원하는 것인지,

목표를 부모의 눈높이로 하는 것인지, 아이의 눈높이로 하는 것인지,

잘 생각하고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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